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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우리나라

서울여행|경복궁

앤나 2011. 11. 12. 22:12

  경복궁은 조선왕조 개국 4년째인 1395년에 처음으로 세운 으뜸 궁궐이다.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뜻으로 경복궁이라 이름 지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목멱산(지금의 남산)을 안산으로 삼아 풍수지리적인 터잡기에서도 한양의 중심을 차지했다.

정문인 광화문 남쪽으로 관청가인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를 조성하고, 그 연장선 위에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 주요한 궁궐건물들을 일렬로 놓아, 왕조국가인 조선의 상징 축으로 삼았다.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후, 제2의 궁궐인 창덕궁을 재건하여 정궁으로 삼았지만, 경복궁은 재건을 미루어 270년 이상을 폐허로 남게 되었다.

1867년에야 비로서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경복궁을 재건했다.

고대 중국의 예법을 조선 왕실의 전통이나 현실과 조화시켜, 전체적으로는 규칙적 배치를 따르면서 부분적인 변화와 파격을 가미했다. 재건된 경복궁은 691,921㎡의 광활한 대지에 약 500여동의 건물을 지어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었다. 중심부에 정무공간을 두고, 좌우 뒤편으로 왕족의 생활공간, 그리고 곳곳에 정원시설들을 배열했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어 중심부의 일부 건물들만 남았고, 광화문을 비롯한 외전 일부를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의 정면을 막기도 했다.

1990년부터 복원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원래의 홍례문과 행각을 복원했고, 왕과 왕비의 침전 및 왕세자가 기거한 동궁을 비롯하여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시 복원하여 경복궁의 원래의 모습을 회복 중이다.

 

 

 

먼저 티켓을 구입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광화문엔 이렇게 보초를 서시는 분들이 계신다. 보초라는 단어가 맞을려나? ;ㅁ;

 

 

 

대인은 3,000원이고, 10인이상이면 2,400원이다. 관람료가 비싸지는 않다.

 

 

 

홍례문은 경복궁의 궁성 안쪽에 위치한 첫 번째 문으로 티켓을 끊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다.

 

 

 

근정전으로 국가 의식을 치르고 신하들의 하례와 사신을 맞이 하던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색상.

 

 

 

이 문으로 나가면 왕과 신하들이 정치를 논하던 편전인 사정전이다.

 

 

 

건물을 찍진 않았지만 이 곳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으로 강녕전, 교태전이라고도 한다.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는 왕비의 침전 뒤편에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태종 때에는 48개의 기둥에 꿈틀거리는 용을 조각하였으나,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2층

바닥은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 높이를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경회루앞에서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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